
대구 중구 동산동, 계명대 동산병원 곁에 낮은 언덕이 하나 있습니다. 백 년이 넘은 선교사 주택 세 채가 담쟁이의 이름을 지닌 언덕 위에 서 있고, 그 아래로는 계단이 고딕 성당 쪽으로 이어집니다. 코스를 따라가면 시인이 바라보던 석류나무와 조선 시대부터 약재 시장이 서던 거리, 그리고 중국인 건축가가 지은 집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 2코스 ‘근대문화골목’은 약 1.64km의 길 위에 서로 다른 시간을 포개 놓은 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골목이야기, 그 첫 번째 길에서 열 곳을 차례로 지나갑니다.
푸른 담쟁이가 덮었던 언덕, 청라언덕
청라언덕은 중구 동산동 계명대 동산병원 인근에 있으며, 이름은 ‘푸른 담쟁이덩굴’에서 왔다고 전해집니다. 청은 푸르다, 라는 담쟁이를 뜻하고, 동산(東山)이라는 이름은 옛 달성의 동쪽이라는 뜻에서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8년 선교사 아담스와 존슨이 이 땅을 사들여 병원과 학교를 세운 것이 시작이었고, 그래서 이곳은 ‘선교의 언덕’, 대구 근대화의 시작점으로 불립니다. 1900년대 초 미국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지어진 스윗즈 주택·챔니스 주택·블레어 주택 세 채가 남아 각각 선교박물관·의료박물관·교육역사박물관으로 쓰이며,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박물관으로 문을 연 대구시 지정 문화재입니다. 언덕 위에는 가곡 ‘동무생각’ 노래비도 서 있습니다.

언덕과 성당을 잇는 아흔 개의 계단, 3.1만세운동길
청라언덕에서 계산성당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은 3.1만세운동길로 불리며, 흔히 90계단이라고도 합니다.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 당시 경북 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이 계산성당 앞에서 일어났고, 청년과 시민, 서문시장 상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오가던 오솔길이었다는 설명도 함께 전해집니다. 지금은 언덕을 잇는 계단으로 남아, 짧은 길이에 비해 긴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붉은 벽돌 위에 선 첫 서양식 건물, 계산성당
계산성당은 1902년 준공된 고딕 양식 성당으로, 당시 대구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소개됩니다. 건축에는 중국인 목수가 참여했다고 전해지며, 붉은 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현존하는 1900년대 성당 건축물로는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항일운동의 거점 역할을 한 곳으로도 소개되며, 오랫동안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었으나 현재 그 역할은 범어대성당이 맡고 있습니다.
시인의 석류나무와 빚을 갚자던 외침, 이상화고택과 서상돈고택
계산성당 다음 걸음은 두 채의 고택으로 향합니다. 이상화고택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저항시인 이상화가 살던 집으로, 시인이 바라보던 석류나무가 아직 살아 있다고 전해지며 시민 기부운동으로 보존된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상돈고택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의 집으로, ‘우리 빚은 우리가 갚자’는 구호 아래 펼쳐진 이 운동은 민족자립정신을 일깨운 대표적 시민운동으로 평가됩니다. 시와 운동, 서로 다른 방식의 저항이 같은 코스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셈입니다.
명나라 사람이 심게 한 나무의 이름, 뽕나무골목
계산성당과 이웃한 골목은 뽕나무골목이라 불립니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의 지리전략가 두사충(杜師忠)이 조선에 귀화해 계산동 일대에 터를 잡았고, 의복 문제를 해결하려 뽕나무를 많이 심게 하고 길쌈을 권했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이 왔다고 전해집니다.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오자 살던 자리를 내주고 이곳에 정착했다는 설명도 함께 소개됩니다. 골목 이름 하나에 임진왜란 뒤 한 귀화인의 사정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대구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개신교 교회, 대구제일교회
대구제일교회는 1893년 설립된 대구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 소개됩니다. 예배 공간에 머물지 않고 의료와 교육, 복지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라언덕의 선교사들이 병원과 학교를 세운 흐름과 같은 줄기에 놓인 장소로 읽힙니다. 같은 코스 안에 천주교 성당과 개신교의 첫 교회가 함께 놓여 있는 것도 이 골목의 특징입니다.

봄가을 두 번 열리던 약재 시장의 뒷길, 약령시와 영남대로
약령시 거리에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있습니다. 대구 약령시는 조선 효종 6년인 1658년부터 봄과 가을, 한 해 두 차례 대규모 한약재 시장이 열린 곳으로 소개됩니다. 영남대로는 그 약령시장의 뒷골목에 해당합니다. 선교사와 성당이 들여온 서양식 근대 사이에,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또 다른 시간이 이 구간에 겹쳐 있습니다.
‘질다’에서 온 긴 골목, 진골목
종로 일대에 형성된 진골목은 대구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은 ‘길다’를 뜻하는 경상도 말 ‘질다’에서 온 ‘긴 골목’이라는 설명이 전해집니다. 경상감영 시대부터 해방 전까지 대구의 토착 세력이던 달성서씨의 집성촌이었고, 이 골목을 통하면 군사·행정로였던 종로를 거치지 않고도 감영과 중영까지 갈 수 있었다고 소개됩니다. 큰길을 피해 가는 길이 곧 큰집들이 모여 살던 길이었던 셈입니다.
중국인 건축가가 지은 붉은 벽돌집, 대구화교협회
코스의 끝자락에는 대구화교협회 건물이 있습니다. 1929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 2층 서양식 주택으로, 대구의 부호 서병국이 중국인 건축가 모문금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겨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투어는 화교소학교 쪽에서 마무리되기도 합니다. 계산성당에 중국인 목수가 참여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놓고 보면, 이 골목의 근대에는 중국의 손길도 섞여 있었던 셈입니다.
걷기 전에 알아둘 것
한국관광공사 안내 기준으로 2코스 정기투어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운영되며 참가비는 무료이고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걷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다만 운영 방식은 바뀔 수 있습니다. 밤에는 청사초롱을 들고 해설사와 걷는 ‘근대골목 밤마실’ 프로그램이 있으며, 요일과 코스는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동산선교사주택 같은 박물관은 보수나 휴관이 잦아 방문 전 운영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고, 최신 안내는 대구 중구청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와들 의견
와들은 이 코스의 특별함이 길이가 아니라 밀도에 있다고 봅니다. 약 1.64km, 걸어서 두 시간 남짓한 거리 안에 미국 선교사의 사택과 고딕 성당, 저항시인과 국채보상운동가의 집, 조선 효종 때부터 이어진 약재 시장, 그리고 중국인 건축가가 지은 서양식 주택이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서양에서 온 근대, 스스로 일어서려 한 근대, 조선에서 이어진 시간, 중국의 손길이 닿은 근대가 한 골목에 겹쳐 있는 셈입니다. 다섯 코스 가운데 한 해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이 길을 택한다는 보도도 그 밀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읽힙니다.
다만 이 글이 다 말해 주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선교사주택 박물관의 개관 여부, 정기투어와 밤마실의 요일과 시간은 시기에 따라 바뀌며, 이 글에는 주소나 교통편 안내를 담지 않았으므로 방문 전 대구 중구청 누리집에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또 2024년 방문객이 5만6천여 명으로 전년보다 약 11% 늘었다고 보도된 만큼,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조용히 걷는 선택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와들은 봅니다.
도시의 숨은 골목과 그 안에 쌓인 시간을 따라 걷는 연재입니다. 이 글은 첫 번째 길이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국의 골목이야기에서 모아 볼 수 있습니다.
글: 와들 편집데스크 작성
담은 낡아가도, 골목은 길을 기억합니다.
— 와들편집자 주





